양귀비가 반쯤 덮인 검은 비명(碑銘)이 나왔다. 나는 거기서 “마리아……”를 읽기 시작했다. 죽음 앞에서 그런 글귀를 읽자 내 영혼은 그녀에게 물어보고 저주하며 애원했다. 그리고 혼자 그녀를 외쳐 불렀다. 하지만 나의 이런 부름에 무덤은 차갑고 냉담하게 아무 말 없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나는 팔로 그 무덤을 붙잡으면서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낙엽 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머리를 들었다. 브라울리오가 내게 가까이 와서 트란시토가 선물한 장미와 백합으로 만든 화관을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섰다. 나는 십자가에 화관을 걸고 나서 그 십자가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마지막 안녕을 고했다.
—본문 중에서
007 마리아
385 작품 해설
396 작가 연보
저자 : 호르헤 이삭스Jorge Isaacs
Jorge Isaacs(1837-1895) 1837년 콜롬비아의 칼리에서 태어났다. 1860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864년 보고타 지식인들의 모임인 ‘엘 모사이코’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문학계에서 활동했다. 1867년에는 《마리아》를 출간했으며, 1876년에 세사르 콘도와 함께 《자유당 프로그램》이라는 신문을 창간했고, 이후 혁명 정부에 가담하여 보수당 정권과 투쟁하다가 패배하고 사업 실패로 경제적으로 어렵게 말년을 보내다가 1895년에 이바게에서 타계했다. 《마리아》는 에프라인과 마리아의 비극적 사랑을 통해 사랑을 위해 죽음과 맞서 싸우는 문학의 영원한 주제를 다룬다. 이 작품은 우수와 이국적 자연의 시적 묘사가 보여 주는 서정성을 비롯해서 은은한 에로티시즘과 불행한 종말이라는 특징... more
역자 : 송병선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콜롬비아의 카로 이 쿠에르보 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를, 하베리아나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베리아나 대학교와 콜롬비아 국립 대학교에서 전임 교수로 일했으며, 현재는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보르헤스의 미로에 빠지기》, 《영화 속의 문학 읽기》,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한국전쟁》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거미 여인의 키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픽션들》, 《알레프》, 《말하는 보르헤스》, 《염소의 축제》,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등이 있다. 제11회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