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사랑만큼이나 꾸준히, 그리고 자주 사용되는 문학 소재이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빈부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출생, 노화처럼 누구나 한 번씩은 겪게 되는 보편적인 사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필연적인 사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죽음에 대해 노래한 작품이 없을 수 없다.
‘죽음’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언어권의 시를 한데 모은 《시인, 죽음을 노래하다》는 지난 2020년 간행된 《시인, 사랑을 노래하다》과 형식을 공유하는 후속 시선집으로, 오랜 기간 시를 읽고 공부해 온 문학 전문가들이 죽음에 관한 시들을 선별, 번역하여 간략한 해설과 함께 엮은 책이다. 이번 《시인, 죽음을 노래하다》에서는 기존의 한국, 중국, 독일, 프랑스, 영미 시에 더해 일본과 스페인-라틴아메리카 시에 관한 장이 추가되어 독자들이 동서양의 시들을 더욱 총체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언어권별로 나누어진 각 장에서는 시 열다섯 편이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죽음이 역사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꾸준한 문학적 화두였음을 보여준다.
죽음은 항상 우리의 곁에 있지만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 명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시인들은 형태도, 알려진 바도 없는 죽음을 작품으로 옮기기 위해 제각기 다른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은, 형식 측면에서 소네트와 같은 엄격한 정형시부터 산문시나 일상어로 된 자유시를 아우르며, 시기적으로도 8세기에 우리 땅에서 월명사에 의해 쓰인 〈제망매가〉, 중국의 당·송 시대 시들, 서구의 중세 시로부터 출발해 파울 첼란, 자크 프레베르, 파블로 네루다 등 현대 시인에 의해 쓰인 것들까지 다채롭다. 그러나 이 시들이 죽음을 포착하고 그것에 대해 사유한 흔적만큼은 마치 바위에 암각된 손처럼 선명하여, 엮은이들의 말처럼, “시인의 말에 깃든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 소개된 시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셰익스피어나 괴테와 같이 우리에게 이른바 ‘고전’으로 잘 알려진 시인들의 시도 있지만, 르네상스 시기의 시인으로 지금껏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모리스 세브,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번역 소개가 미진했던 칠레 출신의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전간기(제1차 세계대전 종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의 기간)에 단명한 여러 일본 현대 시인들과 철학자나 소설가가 아닌 시인으로서의 니체와 헤세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인들의 시도 다수 수록되어 눈길을 끈다.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은 비통한 감정만으로 채워진 책은 아니다. 죽음 그 자체를 주제로 한 시,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여 쓴 시나 친밀한 사람의 죽음 이후, 변화한 자신의 삶의 태도를 말하는 시 등 주제가 죽음일 뿐 죽은 사람, 죽음을 바라보는 시점, 죽음을 대하는 태도 모두 다양하다. 두려움, 슬픔, 절망같이 ‘죽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정적인 감정을 노래하는 시도 있지만 담담함, 결의, 용기 같은 역설적이고 초월적인 감정을 표현한 시도 적지 않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죽은 사람의 나이대와 사인은 다양하고 죽음의 이유에는 높았던 영유아 사망률이나 전쟁과 같은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어 또 다른 감상을 느끼게 한다.
‘죽음’이라는 하나의 주제하에 모여들고 중첩되는 다양한 시인들의 시선과 사유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 시를 공부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시를 애호하는 일반 독자들의 시 읽기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요건을 갖춘 이 책은 사랑을 노래하는 시들을 모은 ‘사화집’만큼이나 죽음에 관한 시들의 ‘사화집’(anthologia, florilège―꽃들의 모음)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시인, 죽음을 노래하다’ 서문에 부쳐
1 한국 시
제망매가 월명사
찬기파랑가 충담사
김극평의 죽음을 곡하며 이숭인
딸을 묻고 이덕무
죽은 손녀를 애도하며 남씨
지난밤 불던 바람에 《청구영언》
복사꽃 배꽃 은행나무꽃 향기 나는 풀들아 《청구영언》
내 본래 천상계 사람으로 《청구영언》
초혼 김소월
호랑나비 정지용
꽃 이육사
아침 이상
별 강소천
또 다른 고향 윤동주
황성옛터 왕평
2 중국 시
성 남쪽에서의 전투 〈한요가〉(《악부시집》)
상동문에서 〈고시십구수〉
어린 아들의 죽음 공융
나의 죽음 도잠
죽음 예찬 왕범지
임종의 노래 이백
제갈량 두보
가을비는 내리고 이하
장미가 운다 이상은
항우 생각 이청조
아이들에게 육유
사이별 방중현
아직도 죽지 못하고 황종희
나를 묻어다오 주샹
샤오훙의 무덤 다이왕수
3 일본 시
소리로 모두 마쓰오 바쇼
땅에 묻으면 우에지마 오니쓰라
주무시는데 고바야시 잇사
가래가 한 말 마사오카 시키
표박 이라코 세이하쿠
너 죽지 마라 요사노 아키코
민들레 기타하라 하쿠슈
작은 무덤 이시카와 다쿠보쿠
허물어지는 육체 하기와라 사쿠타로
소리 없는 통곡 미야자와 겐지
봄 야기 주키치
눈 가네코 미스즈
더럽혀진 슬픔에…… 나카하라 주야
봄날 미친 생각 나카하라 주야
눈이 내린다 사가와 지카
4 영미 시
한 해 중 그런 때를 그대 내게서 보리라 윌리엄 셰익스피어
내 첫 아들에게 벤 존슨
죽음이여, 거만 떨지 말라 존 던
고인이 된 내 아내의 영혼을 본 것 같도다 존 밀턴
우린 일곱이에요 윌리엄 워즈워스
기쁨에 놀라 윌리엄 워즈워스
내가 죽을 수 있단 생각에 두려움이 들 때 존 키츠
눈물이, 부질없는 눈물이 앨프리드 테니슨
나는 파리가 윙윙거리는 걸 들었다 에밀리 디킨슨
내가 죽음을 위해 멈출 수 없기에 에밀리 디킨슨
젊어서 죽은 경기자에게 앨프리드 에드워드 하우스먼
꺼져라, 꺼져 로버트 프로스트
죽은 젊은이를 위한 송가 윌프레드 오언
점잖게 저 영원한 밤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딜런 토머스
아이스크림의 황제 월리스 스티븐스
5 독일 시
아름다움의 무상함 크리스티안 호프만 폰 호프만스발다우
이른 무덤들 프리드리히 고틀리프 클롭슈토크
마왕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나를 잊지 마세요 노발리스
예배당 루트비히 울란트
잘랄루딘 루미의 시를 따라 프리드리히 뤼케르트
어디? 하인리히 하이네
생각하라, 그것을, 오 영혼이여! 에두아르트 뫼리케
유언 프리드리히 니체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라이너 마리아 릴케
혼자서 헤르만 헤세
구렁텅이에서 게오르크 트라클
검은 물방울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른
죽음의 푸가 파울 첼란
작은 아스타 꽃 고트프리트 벤
6 프랑스 시
내 청춘을 그리워한다 프랑수아 비용
헤카테처럼 그대는 산 채로 죽은 채로 모리스 세브
오월, 가지 위에 핀 장미를 바라본다 피에르 드 롱사르
담대한 젊은이 이카로스가 이곳에 추락하고 말았다 필리프 데포르트
죽음의 신과 나무꾼 장 드 라퐁텐
타란토의 처녀 앙드레 셰니에
내일, 새벽, 들판이 하얗게 될 시간이 되면 빅토르 위고
가난한 자들의 죽음 샤를 보들레르
사후의 회한 샤를 보들레르
폐적자 제라르 드 네르발
골짜기에 잠든 자 아르튀르 랭보
순결하고, 강인하고, 아름다운 자는 오늘 스테판 말라르메
낙엽 레미 드 구르몽
죽음 사랑 삶 폴 엘뤼아르
바르바라 자크 프레베르
7 스페인-중남미 시
좋은 사랑의 이야기 후안 루이스
죽음의 무도 작자 미상
아버지의 죽음에 바친 시 호르헤 만리케
소네트 25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
소네트 10 가르실라소 데 라 베가
소네트 44 프란시스코 데 알다나
소네트 30 프란시스코 데 알다나
삶의 거짓 같은 짧음에 대해 루이스 데 공고라
죽음이 채무 집행하는 존재임과 시간의 위력을 알라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
운율 52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
어머니에게 로살리아 데 카스트로
기수의 노래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부재하는 영혼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나 노래하리 네가 좋아했던 것을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오직 죽음만이 파블로 네루다
저자 : 장성현
고려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석사학위, 미국 아이오와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에선 워즈워스와 콜리지를 중심으로 하여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 작가들의 언어 이론을 연구했다. 낭만주의시대(ca. 1780-1830)와 빅토리아시대(1830-1901) 영시를 주로 연구하고 가르친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 비극과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단테, 밀턴 등으로 대표되는 서사시문학, 그리고 셰익스피어에도 관심이 많다. 19세기 낭만주의를 전 유럽적인 현상으로 보고 유럽 각국의 낭만주의 태동과 전개 양상을 연구할 계획을 갖고 있다. ... more
저자 : 손주경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투르대학교 르네상스 고등연구소(CESR)에서 롱사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르네상스 궁정의 시인 롱사르』와 『글쓰기의 가면Le masque de l’écriture』(제네바, 공저)이 있으며, 역서로는 『프렌치 프랑스』 『헤르메스 콤플렉스』 『카상드르에 대한 사랑시집』 등이 있다. 「기억과 시인의 운명」 「말의 부재와 시인의 말」 「‘허공’에 대한 사랑 시인의 해석」 등의 롱사르에 대한 연구와 「번역의식과 시적 비전의 상관성」, 「르네상스 번역과 인문주의 정신」 「라 보에시의‘자발적 복종’과 자유에 대한 인식」 「16세기 시학의 지형도」 등 르네상스 번역과 시학 그리고 ... more
저자 : 김재혁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이며 시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에 《서정시의 미학》 《복면을 한 운명》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 《바보여 시인이여》 등이 있으며, 시집 《딴생각》 《아버지의 도장》 《내 사는 아름다운 동굴에 달이 진다》 등을 지었다. 《딴생각》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Gedankenspiele”라는 제목으로 직접 번역하여 독일에서 출간했다. 옮긴 책으로 릴케의 《기도시집》 《두이노의 비가》 《말테의 수기》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하이네의 《노래의 책》 《로만체로》, 횔덜린의 《히페리온》, 귄터 그라스의 《넙치》, 노발리스의 《푸른 꽃》,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뮐러의 《겨울...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