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조이스는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를 쓰는 데 무려 17년을 쏟아부었다. 영어 외 60여 개 언어, 총 6만여 개의 어휘로써 조직된 이 난해한 작품은 1927년 잡지 《트랑지숑》(transition)에 일부분이 소개되기 시작하여 1939년에 출간되었다. 《피네간의 경야》는 비록 책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결코 ‘읽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요, 복잡한 미로였다. 한국 제임스 조이스 연구의 태두 김종건 교수가 ‘악마의 언어’에 결박당할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십수년 동안 이 작품의 번역에 매달린 끝에, 한국은 지난 2002년 세계에서 네 번 째로 《피네간의 경야》 번역국이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최초의 번역을 수정한 개역본과 1만 1,700여 개의 주석이 달린 1,100쪽 분량의 주해서 《피네간의 경야 주해》를 세상에 내놓았다. 작품의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김종건 교수는 《피네간의 경야》가 보통의 독자를 위한 책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의 열정 덕에, 조이스가 ‘무법의 언어’로 쌓아올린 요새를 넘보고 ‘꿈의 언어’로 짜인 미로를 탐색할 수 있게 되었다.
조이스 최후의 대작, 세계에서 네 번째 번역, 10년 만의 개역
제임스 조이스 | 김종건 옮김 크라운판 양장 | 632쪽 | 38,000원
이 복잡한 미로의 배경이 되는 ‘멀린거 하우스’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위치한 주점으로 현재에도 성업 중이다. 여기 이어위커 가족(아버지, 어머니, 아들 솀과 숀, 딸 이씨)이 있고, 이어위커는 꿈을 꾼다. 《율리시스》가 깨어 있는 시간의 사건을 서술한다는 점에서 ‘낮의 책’인 반면, 《피네간의 경야》는 잠자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으로 상상되는 사건을 다룬 ‘밤의 책’이다. 총 4개의 부는 비코의 역사의 3단계 및 회귀 각각을 암시하고 상징한다. 1938년 3월 21일 월요일부터 다음날 이른 아침 동안 이어위커라는 한 인간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총체적 인간의 출생, 결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주제를 다룬다. 그의 꿈속에서, 등장인물들은 타인들로, 무생물로 변화하고, 그 배경 또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 다양한 변주들은 이미 작품의 제목에서 예고되고 있다. 〈피네간의 경야〉라는 아일랜드 민요속에서, 술을 사랑하는 벽돌 운반공 피네간은 사다리에서 추락하여 죽는다. 그의 경야에서 조문객들이 그의 얼굴에 위스키를 엎지르자 피네간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문객들과 향락을 즐긴다. 따라서 이 코믹한 민요는 제목뿐만 아니라 《피네간의 경야》의 코미디성의 근간이 된다. ‘經夜’(WAKE)는 죽은 사람을 조문하는 기간과 기상·부활의 순간을 동시에 의미한다. 이 이중의 단어는 등장인물, 장소, 사건들이 다양하게 변주되고 추락/부활, 죄/면죄, 부패/갱신의 다루는 이 작품의 구조적, 주제적 구도를 암시하는 것이다.
《피네간의 경야》를 탐독하기 위한 1만1,700여 개의 주석!
김종건 크라운판 양장 | 1144쪽 | 59,000원
이러한 구도 역시 작품을 읽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악명과 달리, 《피네간의 경야》는 어느 누구라도 탐독이 가능하다. 《피네간의 경야》 자체가 표면상 아무리 어려운 고전이라 하더라도, 대중의 민요로부터 인간의 죽음과 부활의 주제를 따온 만큼 ‘보통 사람’을 위한 것임을 입증한다. 독자는 이미 알고 있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작품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접해 본 독자라면 《피네간의 경야》 사방에서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패러디한 문구를 채취할 수 있고,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독자는 시시때때로 그 이론이 녹아든 구절을 길어낼 수 있다. 이 대양에는 성경 구절을 변형한 메아리가 플랑크톤만큼이나 많고, 불교, 유교, 이슬람교의 어휘가 유유히 유영한다. 김종건 교수는 원서 한 쪽당 많게는 마흔 개의 주석을 달아, 독자가 자신의 지적 경험에 의해 포착한 단어와 문장의 배후를 짐작하는 것이 좀더 용이하도록 배려하였다. 조이스는 보통의 독자를 위한 지적 유희를 작품 곳곳에 유려한 솜씨로 숨겨놓았을 뿐이다. 응축되고 혼성된 조어들 때문에 작품이 복잡해 보일 수는 있어도 결코 이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조이스는 현미경으로 언어를 들여다보듯 낱낱이 해체하고 다시 그것을 규합해 다 의적인 언어를 만들어 냄으로써, 어떤 특수한 배경을 가진 독자라도 조이스 자신이 의도한 수십 개의 의미 중에 하나 이상의 의미를 추출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고, 이는 김종건 교수의 《피네간의 경야 주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이스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피네간의 경야》에 숨겨놓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떤 이는 《피네간의 경야》 속에서 수소폭탄을 위한 공식과 DNA의 중복 나선 구조를 적출했다. 새로운 수수께끼를 발견하고 그것을 푸는 것은 이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온갖 소재와 주제가 유영하는 바다속에, 독자는 그물을 던져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어획량을 수확하면 그만이다.
이번 개역본에서는 10년 전 번역본의 단어와 문장을 무수히 수정한 것 외에도 작품을 물 흐르듯 읽어 나가길 원하는 독자를 위해 작품 곳곳에 짧은 설명을 가미해 독서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또한 원서의 쪽번호와 함께 주석번호를 달아, 이 책에 대응하는 주해서인 《피네간의 경야 주해》에서 해당 쪽의 구절과 그 설명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거대한 작업을 통해, 일생 동안 조이스의 대양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보물을 건져 올린 김종건 교수는 말한다. “왜 우리는 이 분명하게도 거의 희망이 없는 듯한 난해한 작품을 읽고 타인들로 하여금 읽도록 권고해야 하는가? 이는 필경 탐색 자체가 흥분적이요, 비록 그것이 불확실한 암운에 가려 있을지라도, 분명히 신기하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에 구사된 조이스의 천재적 언어유희는 가히 초인적이거니와, 이는 거대한 양의 지식의 인유들을 담은 ‘다문화의 용광로’ 격으로, 이를 달구고 단조(鍛造)하는 일은, 그들이 담은 문학적, 신학적, 종교적, 신화적, 음악적, 역사적, 전설적, 정치적 지식을 식별하고 즐기는 데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읽는 것은 독학(獨學)의 거대한 과정이 아닐 수 없으니, 이 독학에 의한 추적의 기쁨과 보상은 많고도 엄청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