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탈식민론의 관점에서 영문학 및 비평이론을 논의하였다. 탈식민론은 문화의 정치적 의미에 주목하면서, 특히 문화와 문화 간의 위계적 관계를 완화하고 해소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이 책은 전반부는 주로 이론적 측면에서, 후반부는 주로 구체적 경우 특히 문학작품 읽기의 측면에서 탈식민론의 주요 과제들을 집중적으로 논의하면서 현시점의 탈식민론을 재점검하고자 하였다.
영문학과 비평이론 분야에서 탈식민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지만, 짧은 기간 동안 이룬 성과는 상당하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한편으로 영문학의 가치와 권위가 정치 문화적 자장 안에서 가능한 것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영문학의 바깥에 위치한 타자의 입장에서 영문학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에서 문학과 문화에 있어서 미학적 차원이 과연 완전히 용도폐기될 수 있는 것이냐는 점이 아쉬운 점이었고, 더 나아가 날로 새로워지고 있는 전 지구적 환경에서 탈식민론이 얼마나 현실 설명력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의구심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1부는 탈식민론의 근저를 이루는 관계인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이에 대한 탈식민론적 시각에 내포된 윤리적 차원과 미학적 차원의 문제를 논의하였다. 더불어 탈식민론의 형성과정과 문제의식을 살피고자, 1980년대 이후의 다양한 문학과 문화이론의 흐름이 탈식민론과 연결되는 방식을 설명하였으며, 특히 이러한 흐름 가운데 윤리적 차원에 대한 강조가 낳은 미학적 사상(捨象)의 문제를 다루었다.
제2부는 탈식민론이 새로운 전지구적 환경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 갖는 의미를 논하였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전지구적 확산과 함께 하는 사이버 공간의 확대에 따라 식민 혹은 탈식민의 관점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논의는 한편으로 식민과 탈식민의 문제가 오늘의 사이버 공간에서 어떻게 재연되고 있는지를 보여 주며, 다른 한편으로 탈식민론이 이러한 사이버 공간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갖는 적실성과 효용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사이버 공간과 문학과의 관계를 점검하였으며, 이 두 문화 형식을 “후기인쇄문화”로 파악하였다. 여기에서 “후기”란 사이버 문화가 소설형식과 같은 높은 단계의 인쇄문화와 연장과 단절의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는 점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러한 위치 설정이 사이버 문화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인간의 몸과 사회공동체를 논의하는 기조가 되고 있다.
제3부는 20세기 초반의 영문학 그리고 전 세계에 걸친 영어문학에서 식민과 제국 그리고 탈식민의 문제를 가장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을 되돌아보았다. 첫 장에서는 영문학의 정전에서 서구 이외의 지역이 어떻게 모험과 욕망의 장으로 편입되어져 왔는가를 논의하였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20세기 초 동양과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산출한 대표적 작가인 키플링과 콘래드 그리고 오웰에서 보이는 동정적, 윤리적, 그리고 자유주의적 시각과 이에 내재하는 유보적 조건 등을 설명하였다. 이들 작가에 이어 각각 아프리카, 동양, 서인도 지역에서 영어로 작품을 써 온 대표적 작가인 아체베와 루시디 그리고 월코트를 예로 들어 영문학이 영어문학으로 확대되는 과정과 그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특히 이들에서 보이는 영어에의 편입과 이에 대한 저항의 문제를 설명하였다.
제4부는 탈식민 이론과 궤를 같이 하는 최근의 문학을 논한 다음, 윤리적 요청과 미학적 차원이 탈식민 텍스트 읽기와 함께 할 수 방식을 논의하였다. 첫 장은 탈식민 문화론이 주로 거론한 문화의 상호 편입과 전복 그리고 혼종의 구도가 구현된 것으로 여겨지는 다문화주의에 내재하는 논리와 그 한계를 지적하였다. 다음 두 장은 민족국가 단위의 문학을 넘어서면서 영어를 사용하는 코스모폴리탄 문학의 가능성과 그 조건을 살펴보았으며, 이와 동시에 영어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위 되받아 쓰기 방식으로 타자의 입장에서 영문학의 정전을 다시 쓰려는 시도들이 갖는 의의를 짚어 보았다. 마지막 장은 개별자의 개별성을 강조하는 윤리학과 미학이 서로 교호하는 논리를 점검하였다. 여기에서는 문학이 개별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강조하는 윤리를 담지하고 있는 만큼, 문학공간 역시 일정한 개별자로 상정되고 그 미학이 모색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탈식민론의 내재적 논리와 그 진행과정에서 문제시되는 윤리학과 미학이라는 두 축은 아포리아적 구도 속에 있다.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상황은 두 축 사이를 부단히 움직이는 운동성에 의해 극복 혹은 포월(包越)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와 문학에 있어 윤리학과 미학이라는 두 축이야말로 끊임없이 편입하고 전복하며 혼종하여 왔고 또 그것은 지속되어야 할 운동이다. 편입과 전복 그리고 혼종의 개념은 탈식민론에서 여러 문화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운동은 정치사회적 측면만이 아니라 윤리와 미적 차원이 교직하는 측면에서 한층 심도 있게 논구될 필요가 있다. 결국 탈식민론에서 미학은 윤리적 고려와 배타적이기보다는 상호 긴장하고 갈등하며, 교호하고 길항하는 측면은 계속적인 고민이 필요한 사안으로 남아야 한다.
제1부. 탈식민의 윤리와 미학
제1장 주체와 타자━우리 문화와 영문학
제2장 역사를 거슬러 새로운 역사로━신역사주의에서 탈식민으로
제3장 윤리학과 미학의 문제적 구조━상호 관계의 재조망
제4장 탈식민 논의와 미학의 목소리
제2부. 새로운 공간의 탈식민론
제5장 후기인쇄문화와 디지털 내러티브
제6장 몸의 탈식민
제7장 사이버 공동체와 인식론적 지도
제3부. 제국의 영문학에서 탈식민 영어문학으로
제8장 20세기 전반기 영문학에서의 동양━모험과 욕망
제9장 따뜻한 시선 속의 제국 이념━키플링
제10장 식민주의와 영국적 경험주의━콘래드
제11장 제국 공간에서의 자유주의━오웰
제12장 영문학에서 영어문학으로━아체베와 그 이후
제4부. 편입과 전복 사이, 그리고 개별성
제13장 탈식민 이후의 제국의 논리━미국의 다문화주의
제14장 민족문학과 코즈모폴리턴 문학
제15장 영문학 정전 다시쓰기의 이념과 성과
제16장 탈식민 문학 읽기━개별성의 윤리와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