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파스테르나크 창작 세계를 20여 년간 연구해온 전문가가 지난 2017년 10월 러시아 혁명(1917) 백주년을 맞이해 쓴, 국내 최초의 파스테르나크 작품세계에 대한 소개서이자 전문서이다. 저자는 본서를 출간하면서, 초기 작품에서 《닥터 지바고》에 이르기까지 각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의도는 물론, 작품 자체의 내용과 사실들이 좀 더 정확하고 올바르게 전달되길 희망한다.
《닥터 지바고》는 1910년대부터 대작의 산문을 쓰길 갈망하며 일생동안 장편을 기획한 시인 파스테르나크의 소망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출간과 함께 소설은 노벨상에 선정되지만(이반 부닌에 이어 러시아에서 두 번째) 혁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작가는 추방될 위협에 처해 수상을 거절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작가는 혁명을 비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가. 혁명 백주년을 맞이해 이 질문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전 생애에 걸쳐 구상해온 최후 작품에서 작가는, 당시 45년간의 러시아 역사 이미지 속에서 예술, 복음서, 역사에서 인간의 삶, 그리고 여타 다른 많은 것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했다. 바로 그의 기독교의 모습과 분위기 속에서 말이다. 그는 소설에서 해당 시기의 러시아 사회와 역사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려했을 뿐 혁명을 비판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실제로 혁명을 비판해 추방을 당한 러시아의 네 번째 노벨상 수상자(1970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달리, 파스테르나크는 당시 러시아는 혁명을 다루고 비판하기엔 시기상조라고 보았다. 러시아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지녀 망명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그가 격변의 러시아사를 통해 구현하려 했던 건 ‘삶(생명)의 찬미’였다. 따라서 볼세비키 혁명에서 그와 그의 주인공 지바고의 주목을 끈 것은 삶이 파괴되는 모습들이었다. 지바고의 온 관심은 생명과 삶을 보호하고 유지하는데 있는바, 그는 어떤 사회주의 이념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꿋꿋이 사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삶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 그만의 혁명관이 있다. 혁명이란 영원히 생성, 발전하는 삶의 한 일시적 현상이자 뇌우와 같이 대기의‘화학적’현상에 불과했다. 혁명은 지나가고 다시 정상적인 삶의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 본 것이다.
《닥터 지바고》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작가의 이해, 그의 삶의 개념이 진화해온 모습에 대한 이해가 수반돼야 한다. 바로 이전 작품들과의 연계 속에서 말이다. 그럴 때 시와 산문 등, 작가의 전 창작 세계를 종합하는 이 작품의 의미가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작가의 작품 세계와 《닥터 지바고》를 함께 실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각 작품은 전통에 기반하고 회귀하는 경향을 지녔는데, 이 소설에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푸시킨, 괴테, 도스토옙스키와 디킨즈, 그리고 릴케의 전통이 그러하다.
[추천사]
임혜영 박사의 파스테르나크에 대한 전문서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간 그의 연구의 결산이 나온다는 사실을 축하할 뿐만 아니라 우리 독자에게 처음으로 파스테르나크 작품세계 전체를 조명하는 친절한 소개서가 나온다는 사실에 기뻤다. 우리나라에는 파스테르나크가 노벨상 수상자로 지명되면서 그 여파로 소설 ‘닥터 지바고’ 만이 널리 알려져 왔다. 하지만 파스테르나크의 생애를 결산하는 이 대작으로만 그가 노벨상에 지명되었던 것은 아니다. 노벨상 지명은 그의 시를 비롯한 모든 작품들에 대한 경의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소설 ‘닥터 지바고’ 가 처음에 중역으로 알려진지도 몇십년 (?)이 지났건만 작가 파스테르나크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부재해서 안타까운 일이었는데 이제 파스테르나크 전문가에 의한 전문서가 그것도 널리 읽힐 수 있는 언어로 나왔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제대로 된 번역도 별로 없는 파스테르나크의 작품들을 초기부터 후기까지 러시아 문학전통의 맥락 속에서 또 유럽문학과의 연계 속에서 들여다보고 하면서 임혜영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그의 작품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최선
추천사 5
들어가며 7
서장 파스테르나크와 삶, 신비, 그리고 연민 15
I. 혁명 전후의 서정시 세계―1910년대
제1장 괴테, 푸시킨
〈페테르부르크〉, 〈변주 있는 한 테마〉, ‘파우스트 연작시’ 속의 여성 신화 22
제2장 레르몬토프 전통
시집 《삶은 나의 누이》의 구성과 테마 49
제3장 큐비즘
시집 《삶은 나의 누이》 속의 아방가르드적 현상 70
II. 혁명기의 서사시와 산문 세계―1910-20년대
제4장 문학적 인상주의
중편 《류베르스의 어린 시절》 연구 110
제5장 ‘계열체 시학’
세 서사시 《1905》, 《시미트 중위》, 《스펙토르스키》 연구 152
제6장 푸시킨의 역사주의
운문소설 《스펙토르스키》속의 개인과 국가의 대립 테마 176
제7장 푸시킨, 도스토옙스키 전통의 수용과 변형
중편 《이야기》의 여성 해방의 테마 197
제8장 자전적 에세이
《안전 통행증》의 리얼리즘 시학 222
제9장 1917년 혁명
1910-20년대 시들과 서사시 《고상한 질병》 속의 혁명 이미지 254
III. 스탈린기의 시와 《닥터 지바고》의 세계―1930-50년대
제10장 그루지야
작가의 삶과 연작시 〈여름 메모 중에서〉 속의 그루지야 테마 282
제11장 창작적 세계관
《닥터 지바고》의 예술 체계 313
제12장 톨스토이 및 솔로비요프와의 문학적 논쟁
《닥터 지바고》 속의 사랑의 관념 342
제13장 신비주의
《닥터 지바고》 속의 신비체험 374
제14장 도스토옙스키 및 솔로비요프의 종말론 수용
《닥터 지바고》 속의 묵시록과 사회주의 400
원문 출처 428
참고문헌 430
저자 : 임혜영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 노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에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 작가의 일반 철학적 관념에 비추어 본 시와 산문〉이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파스테르나크의 《안전 통행증》에 구현된 리얼리즘 시학〉, 〈파스테르나크와 여성 해방의 테마〉, 〈파스테르나크의 《삶은 나의 누이》에 나타난 레르몬토프 전통〉, 〈러시아 문학과 여성신화〉, 〈파스테르나크와 신비주의〉, 〈푸시킨의 전통에 비추어 본 파스테르나크의 《스펙토르스키》〉, 〈러시아 모더니즘 산문과 문학적 인상주의〉 외 다수가 있다. 파스테르나크를 비롯해 러시아 모더니즘에 관한 연구 논문 발표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역서...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