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르켐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뒤르켐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계
《뒤르켐을 위하여》는 사회학을 창시한 세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을 평생 연구해 온 저명한 사회이론가 에드워드 티리아키언(Edward A. Tiryakian) 미국 듀크대학 명예교수의 저서이다. 이 책의 출간은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를 위하여》(1965), 브라이언 터너의 《베버를 위하여》(1981)에 이은 사회학 창시자 세 명에 대한 현대적인 소개를 갈무리하는 삼부작의 완결로 평가된다.
티리아키언은 이 책을 통해서, 산업화와 프랑스 제3공화정의 격동기를 체험하면서 《사회분업론》, 《자살론》, 《종교생활의 기초형태》 등의 고전을 남긴 뒤르켐이 지금 살아 있다면 세계가 당면한 정치, 경제, 문화, 종교적 사안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마땅한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를 다룬다. 실제적인 사례로, 티리아키언은 2001년 9.11테러 사태를 통해서 뒤르켐이 제시한 사회적 연대의 개념이 어떻게 지구적 연대의 개념으로 확장 적용될 수 있는지를 다룬다(7장). 또한 현대의 성 해방 추세를 뒤르켐의 아노미 개념을 통해 포착하며 양성 평등이 근대성의 부수적 현상이 아닌 핵심적 사안임을 규명한다(11장). 그리고 뒤르켐의 신성성과 세속성의 개념을 통해서 2005년 덴마크 《윌란스 포스텐》지의 “무하마드의 얼굴” 신문만화 사건이 일으켰던 전 세계적인 파장을 분석하기도 한다(12장). 뿐만 아니라,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에 걸쳐 일어났던 이란 혁명,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혁명, 폴란드 혁명, 필리핀 혁명에 큰 영향을 미쳤던 공통분모가 종교임을 밝히고, 종교가 사회조직의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빠뜨릴 수 없는 근본 구성요소임을 논증했던 뒤르켐의 분석을 재조명한다(10장).
더불어 뒤르켐과 베버가 남긴 지적 유산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프랑스와 독일 사회학계를 대표하는 두 사람의 학문적 관계에 대한 분석이 이뤄진 이 책의 3부는 두 학자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사회 실재론(뒤르켐), 사회 명목론(베버)이라는 대비되는 방법론을 채택해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사회학의 거장이 공식적으로는 서로의 학문적 성과를 인용하거나 인정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지적인 영향력을 주고 받았을 개연성을 설득력 있게 다루며 결론적으로 두 사람이 라인 강의 국경을 뛰어넘는 지적인 사촌관계를 맺고 있다고 비유한다(15장). 뒤르켐 전문 연구가인 티리아키언은 뒤르켐에 대한 편애를 뛰어 넘어서, 청교도 문화를 배경으로 생성된 미국 사회와 문화를 파악하는 데에는 뒤르켐이나 마르크스보다는 베버의 학문적 입장이 더욱 적합하다고 인정하기도 한다(14장).
이 책에서는 학문적인 뒤르켐만이 아니라 사회 변혁과 평화를 위해서 행동하는 지식인 뒤르켐을 만날 수 있으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도 접하게 된다. 1890년대 말 프랑스의 극렬한 사회분열을 초래했던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뒤르켐은 드레퓌스 옹호파의 선두에 섬으로써, ‘집합 의식’이나 ‘사회 질서’를 강조하는 그의 사회학이 개인보다는 사회의 전체적 이익을 대변한다는 오해를 실천을 통해 해소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유럽뿐만이 아닌 전 세계가 강력한 제국주의적 성향을 지닌 독일에 짓밟힐 것임을 경고하는 전쟁 팸플릿 <무엇보다도 독일에 관하여>를 집필함으로써 결국 중립을 지키고 있던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했다. 티리아키언은 또한 프랑스에서의 문헌조사를 통해서, 뒤르켐이 젊은 시절 영특한 학생으로 파리고등사범에 입학했지만 가난한 유대교 랍비의 아들이었기에 의복비와 세탁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사정이었음을 찾아내 기술한다. 언어학 전문가로 성장하기를 원했던 유일한 아들 앙드레가 제1차 대전 초기에 전방에서 전사하자, 뒤르켐은 사망한 학문적인 동료 세 명과 아들의 죽음을 기리는 부고를 썼으며, 마침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1917년 죽음을 맞이했다.
이 책을 쓴 티리아키언은 한국에 대해서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사회학자이기도 하다―그가 직접 쓴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에도 이런 관심이 반영되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베버와 뒤르켐의 거시 사회학 이론을 토대로 동아시아의 발전과 근대성을 다루고 있는데 이 글은 지난 1989년 한국 사회학회에서 티리아키언이 발표했던 기조연설을 다듬은 것이다. 티리아키언은 이 장에서 뒤르켐은 한국에 대해서 무관심했고 베버는 한국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을 토대로 한국을 ‘중국의 복사본’ 정도로 파악했다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발전과 근대성을 분석하는 것은 결국 한국 사회과학자들이 독자적으로 해내야 할 책무라고 규정한다.
티리아키언은 자신이 30여년 동안 뒤르켐을 주제로 써 왔던 글 가운데 17편을 골라서 이 책을 구성했다. 그가 직접 밝힌 저술의도는 다음과 같다: “이 책 《뒤르켐을 위하여》는 근대성 심화의 시기에 사회 통합과 연대라는 마치 쌍둥이와도 같은 과제에 새로이 접근하는 데 필요한 틀을 짜는 일에 사회학이 앞장서도록 만들려고 했던 뒤르켐의 소명을, 강의실에서 자라고 있거나 이미 학자로서의 경력을 쌓아 가는 새 세대의 사회학자가 가슴에 품도록 사회학적 일깨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p. 22).
서론 왜 ‘뒤르켐을 위하여’인가?
제1부 뒤르켐의 (재)발견
1장 뒤르켐 이해의 날줄과 씨줄
2장 뒤르켐의 재발견에 대하여
3장 에밀 뒤르켐과 사회 변동
4장 뒤르켐과 후설 — 실증주의 정신과 현상학 정신의 비교
5장 뒤르켐, 마티에, 그리고 프랑스 혁명
— 한 사회학적 고전 작품의 정치적 맥락의 이해
6장 뒤르켐 노동사회학의 자리매김
7장 뒤르켐, 연대, 그리고 9.11
제2부 뒤르켐과 문화 변동
8장 근대 사회학 발현의 맥락
— 옛 사회를 탐색하는 뒤르켐 학파
9장 전위 예술과 전위 사회학
— ‘원시주의’와 뒤르켐(1905-1913년경)
10장 뒤르켐으로부터 마나과까지
— 종교 부흥으로서의 혁명
11장 성적 아노미, 사회 구조, 사회 변동
12장 웃을 일이 아니다
— 덴마크 신문만화 사건에 뒤르켐 적용하기
제3부 뒤르켐과 베버
13장 지식사회학의 한 문제
— 에밀 뒤르켐과 막스 베버가 서로 몰랐다는 것
14장 마르크스도 뒤르켐도 아닌… 아마도 베버
15장 뒤르켐과 베버 — 사촌지간?
16장 집합적 활기, 사회 변동, 그리고 카리스마
— 뒤르켐, 베버, 그리고 1989년
17장 베버와 뒤르켐의 어깨 위에서
— 동아시아와 발현적 근대성
뒤르켐에 대한 티리아키언의 다른 저작
저자 : 에드워드 티리아키언
Edward A. Tiryakian 미국 듀크 대학 사회학과 명예교수 풀브라이트 신세기 학자 프로그램Fulbright New Century Scholars Program의 대표로 선임되어 활동했다. 미국 종교학회장, 프랑스어권 사회학자 국제협회장, 미국사회학회 역사사회학 분과 회장을 지냈고, 이론분과 회장도 두 차례 역임했다. 사회학이론, 사회학사, 사회사상사, 종교사회학, 세계화, 민족 정체성 등을 주제로 삼아 활발한 연구활동을 펼치고있다. 편저서 Sociological Theory, Values, and Sociocultural Change: Essays in Honor of Pitirim A. Sorokin(2013, Transaction Publishers) 외 200 여 편의 논문이 있다.... more
역자 : 손준모
싱가포르 국립대학(NUS) 사회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YTN에서 7년간 기자로 활동한 뒤, 미국 듀크 대학에서 사회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적 자본, 자원봉사론(Volunteerism), 노년과 건강, 경제사회학, 비교사회학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지은 책 Social Capital and Institutional Constraints: A Comparative Analysis of China, Taiwan, and the U.S.(2013, Routledge) 외 여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