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시어사전]

예술어가 된 일상어… 우리말의 보고 ‘詩語’

김재홍 경희대 교수가 1997년에 낸 이 책은 국내 최초임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시어(詩語) 사전이다.

1921~95년 국내 간행된 1만 5,000여권의 시집 중 1,000여권에서 1만 2,000여개의 단어를 골라 표제어로 했다. 일상어는 물론 시인이 만든 조어, 고어, 방언, 은어, 속어, 상징시어 등 표제어마다 그 단어가 쓰인 시 원문과 출전을 밝히고 해설했다. 예컨대 ‘잠’이라는 표제어 밑에는 다시 나비잠, 노루잠, 꽃잠, 부엉이잠, 말뚝잠, 검불잠, 쪽잠, 초벌잠 등의 용례가 실려있다.

‘서녘에서 부러오는 바람 속에는/ 오갈피 상나무와/ 개가죽 방구와/ 나의 여자의 열두발 상무상무’. 서정주의 시 ‘서풍부’ 첫 연이다. 상나무(향나무)까지는 좋은데, ‘개가죽 방구’에 이르면 도무지 그 뜻을 알 길이 없다.

‘개가죽 방구’는 ‘개가죽으로 만든 작은 북’이다. 서정주가 김재홍의 질문에 직접 답한 해석이다. 서정주는 민들레꽃만 해도 민둘레꽃, 미움둘레, 멈둘레꽃, 머슴둘레꽃 등으로 변형해 사용했다.

서정주, 고은의 경우 각각 200~300개에 달하는 조어의 뜻풀이에 성실하게 답해주었다고 한다. 김재홍은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중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 이 시를 쓴다’는 구절의 ‘기루어’란 낱말의 뜻에 의문을 가지면서 현대시의 시어에 대한 연구를 시작, 20년 각고 끝에 이 사전을 만들었다.

한 언어는 생존어에서 생활어로, 예술어(문화어)로 발전한다고 한다. 이 사전은 시인들이 갈고 닦는 일상어가 어떻게 예술어가 되는지, 한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 있는 보고(寶庫)이다.

 – 한국일보 [오늘의책<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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