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의 미래

스테디셀러 미디어추천도서

저자 : 최호근

판형 : 신국판 면수 : 464 쪽

발행년월일 : 2019-05-18

ISBN : 978-89-7641-995-8 03900

단행본 

가격 : 21000

기념의 시대는 벼락처럼 들이닥쳤다. 서로 엉킨 4중 과거사―동학농민혁명, 일제 치하 친일협력,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독재 시기의 인권유린―와 치열한 기억투쟁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 최다의 과거사위원회 보유국이 되었다. 하지만 준비 없이 맞이한 기념의 시대는 기억의 불임을 동반했다. 전국 도처에 각종 기념시설이 세워졌지만, 기억에 대한 갈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부실한 기념의 반복에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살아있는 기억을 맛볼 기회를 갖지 못한 젊은 세대가 아예 과거에 대해 무관심해질지도 모른다. 《기념의 미래》는 이러한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구체적인 현장의 관찰과 분석을 통해 되짚고, 그 미래의 방향에 대해 제언한다.
이 책의 의도는 부제 “기억의 정치 끝에서 기념문화를 이야기하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저자는 기억의 정치가 이제까지 우리 사회 변화의 견인차였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의 정치만으로는 앞으로 세상을 바꾸어갈 기억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강조한다. 기억정치의 역할은 예산과 부지를 확보하고, 큰 방향을 수립하는 데서 끝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문화의 역할이 본격화된다. 기억투쟁을 통해 마련된 기념 공간과 절차에 호흡을 불어넣어 생동하는 기억을 산출하는 것은 문화이기 때문이다.
《기념의 미래》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시대 기념문화에 대한 진단(I부)은 국내와 국외 주요 기념시설에 대한 관찰과 분석(II, III부)을 거쳐, 한국발 기념문화에 대한 전망과 제안으로 끝난다(IV부).
I부는 진단의 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념의례가 늘어나고 기념물, 기념공원, 기념관이 속속 생겨나고 있음에도 기억의 갈증이 심해지는 이유는 박제화된 의례와 기본 개념의 궁리 부족 때문이다. 흐릿한 청사진, 느슨한 로드맵, 모호한 전략은 그 필연적 결과다. 이 문제점들이 정치 과잉과 문화 결핍에서 비롯되었다면, 문제의 극복을 위해서는 문화의 색을 입히고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는 노력을 다채롭게 펼쳐가야 한다. 이런 진단에서 저자는 기억투쟁에서 기념문화로의 이행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II부 ‘우리 기억의 터를 거닐다’에서는 제주, 광주, 영동, 서울이 등장한다. 1948년 제주 4·3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우리 현대사의 중요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12개의 장소들이 다뤄진다. 이 중 네 개가 제주에 있다. 봉개동 언덕의 4·3평화공원, 공동체 붕괴와 개인 삶의 파괴를 고발하는 ‘잃어버린 마을’과 무명천 할머니 집, 그 파괴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조성된 하귀리 영모원이 그것이다. 광주에서는 구 전남도청, 5·18민주화운동기록관, 국립 5·18민주묘지와 망월동 묘지에 주목한다. 의거와 죽음, 매장과 기억으로 이어지는 이 네 개의 장소는 아직도 식지 않은 우리 현대사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한 기념의 복합공간이다. 충북 영동에는 한국전쟁기에 피난길에 올랐던 어린아이들, 부녀자들을 포함해 250-300명의 민간인이 3일 동안 철교 아래 쌍굴에 갇혀 미군의 기관총에 목숨을 잃은 통한의 장소 노근리 쌍굴다리가 있다. 서울에서는 현대사 100년을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쟁의 서사를 전개하는 전쟁기념관, ‘국가를 위한 죽음’의 현창하는 국립 서울현충원을 비판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III부 ‘바다 건너 기억의 터를 찾다’에서는 독일, 폴란드, 헝가리, 이스라엘, 미국에 있는 15개 기억의 처소를 다룬다. 국내에서 발견되는 문제점들을 해외 사례들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치기가 저자의 동기는 아니다. 벤치마킹도 탐방과 서술의 이유가 아니다. 저자는 호평 받는 해외 사례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치열한 논의와 궁리, 기본 개념을 도출하기 위한 숙고와 개념화의 자세라고 밝힌다. 여기서는 가해 책임 재현에 충실한 독일인의 기억방식을 뮌헨 나치기록센터와 베를린 테러의 지형도를 통해 살펴본다. 어린이를 위한 저자의 관심은 베를린 안네 프랑크 센터와 워싱턴 홀로코스트기념관에 대한 관찰에서 드러난다. 아우슈비츠를 통해서는 복원의 강박만이 기억 전승의 지름길이 아님을 강조한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상기기념물을 통해서는 높이 솟은 수직의 석제기념물이 애도의 유일한 방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가 꿈꾸는 기념은 신발을 소재로 비극의 과거를 재현하는 ‘애도의 미디어’에서 잘 드러난다. 1987년 6월 연세대 앞 시위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 이한열의 신발, 1944년 유대인들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둑에 놓인 60켤레의 철제 신발, 워싱턴 홀로코스트 기념관에 전시된 2,000켤레의 나치 희생자 신발은 정서적 거부감 없이 희생자들과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정서적 가교다.
IV부 ‘우리 기념문화를 전망하다’에서는 이제 한국형 기념문화의 소박한 꿈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그 대신 한국에서 시작되어 온 세계가 향유하는 한국발 기념문화의 비전을 제시한다. 그 미래로 나아가는 로드맵의 핵심을 저자는 이렇게 요약한다. 전통의 샘에서 영감을 얻고, 글로벌 기념문화를 면밀하게 살펴보자. 어두운 과거 속에서도 사람 향기 넘치는 스토리 발굴과 가공에 힘쓰자. 죽음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폭력의 과거를 재현하는 왕도는 아니다. 교육을 염두에 둔 전시, 온라인 세계를 개척하는 전시야말로 세대 간 기억전승의 지름길이다. 이런 로드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례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상비 위주의 예산 배정, 학예전문가에 대한 옹색한 처우, 토목과 건축 중심의 사고도 그 덫의 일부이다. 이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 걸음은 이 모든 현실이 문제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억의 투쟁은 공적 기념에 필요한 부지와 예산 마련에 기여했다. 기억의 정치는 그 기념의 공간과 절차를 국가주의적 방식과 공화주의적 방식 가운데 어떤 것으로 채워갈지를 좌우한다. 그렇게 마련된 공간과 절차에 심미적 완성도를 부여하고, 울림이 있는 기억의 공간과 절차로 만들어주는 것, 곧 기억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기억투쟁과 기억정치가 아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기념의 문화다. 방향만큼은 정치적 투쟁이 결정한다. 그러나 색조와 양식을 결정하는 것은 문화적 안목과 역량이다. 부담스러운 과거사의 당사자들이, 그들을 대변했던 정치세력이 이 영역에 깊이 개입하면 할수록, 오히려 기념은 경직되기 쉽다.”

“기념의 문화란 기억의 정치가 작동하고, 기억의 경제가 흥망하며, 사회적 기억이 뿌리내리는 무대요 토양이며 풍토다. 요컨대, 기념문화는 개인기억과 집단기억의 매트릭스다. 이러한 주장은 부담스러운 과거사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사회 구성원 다수가 내켜하지 않는 부담스러운 기억을 활성화해서 공동체의 유익한 공적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문화 메커니즘의 적극적 활용이 필요하다. 전시의 기본 개념 없이 개관한 기념관, 타성에 젖은 기념물, 엄숙하기만 한 공적 의례가 문제라면, 경직된 기념문화, 왜소한 기념문화, 뿌리 없는 기념문화, 배타적 기념문화, 폐쇄적인 민족주의적 기념문화가 문제다.” ■

00 / 기념문화 이야기를 시작하며 07

I 우리 시대 기념의 붐을 진단하다

01 / 기념의 홍수, 기억의 갈증 019
02 / 박제화된 의례, 질식된 기억 025
03 / 개념 없는 기념—‘국가를 위한 죽음’과 ‘국가에 의한 죽음’의 혼동 038
04 / 정치의 과잉, 문화의 결핍—이제는 기억투쟁에서 기념문화로 이행할 때 048

II 우리 기억의 터를 거닐다

05 / 대한민국 기념문화의 최전선—제주 4·3평화공원과 기념관 065
06 / 화해와 상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곳—하귀리 영모원 087
07 / 팽나무와 올레 길의 말없는 증언—‘잃어버린 마을’ 106
08 / 아름다운 풍광, 서러운 이야기—무명천 할머니 집 117
09 / 시멘트 벽 총흔의 증언—노근리 쌍굴다리 123
10 / 식지 않는 집단기억의 불가마—구 전남도청 136
11 / 등을 맞댄 두 묘역—국립5·18민주묘지와 망월동 묘지 147
12 / 작지만 견실한 기억의 터—5·18민주화운동기록관 162
13 / 자책의 사슬을 풀어준 포옹—제37주년 5·18 기념식 176
14 / 상설전보다 특별전이 더 좋은 곳—세종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86
15 / 진부하지만 울림이 있는 공간—용산 전쟁기념관 201
16 / 질서 속의 무질서—동작동 국립 서울 현충원 215

III 바다 건너 기억의 터를 찾다

17 / 기억을 새기는 가해자의 방법 243
—뮌헨 나치기록센터와 베를린 테러의 지형도
18 / 작은 전시, 큰 반향 260
—베를린 안네 프랑크 센터
19 / 복원과 보존의 차이 271
—아우슈비츠의 두 수용소
20 / 진묘의 문화, 가묘의 정치 283
—예루살렘 올리브산과 베를린 홀로코스트 상기기념물
21 / 토포그래피에 새겨진 이스라엘 현대사 297
—헤르츨기념관-야드바셈-국립묘지
22 / 애도의 미디어 317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둑과 워싱턴 홀로코스트기념관의 신발들
23 / 어린이를 생각하는 전시, 어린이가 이해하는 전시 331
—USHMM 다니엘 스토리
24 / 전쟁을 기억하는 미국인의 세 방식 344
—이차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25 / 킹 목사가 살아있는 고향 363
—애틀랜타 시민인권센터

IV 우리 기념문화를 전망하다

26 / 기념관의 혈맥, 스토리 379
27 / 주검으로 재현되지 않는 죽음의 의미 399
28 / 미래 기념의 답을 찾는 자, 온라인에 주목하라 412
29 / 교육을 염두에 둔 전시, 전시를 활용한 교육 425
30 / 글로벌 시대 한국발發 기념문화를 위하여 443

저자 : 최호근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독일 빌레펠트(Bielefeld) 대학교 역사철학부에서 막스 베버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구 역사학의 전통 연구에서 시작된 그의 관심은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를 거쳐 이제는 기억과 기념 문화의 비교 연구로 확대되고 있다. 《베버와 역사주의》(독문), 《독일의 역사교육》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와 《원치 않은 혁명 1848》, 《세계시민주의와 민족국가》(공역) 등의 번역서가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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