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의 제국과 실패국가 -한일관계의 불편한 기원

저자 : 손기영

판형 : 변형 신국판 면수 : 372 쪽

발행년월일 : 2022-01-05

ISBN : 979-11-91161-80-9 9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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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학농민전쟁부터 현재에 이르는 한일관계를 ‘학살’, ‘실패국가’, ‘민중 저항’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물이다. 천 년이 넘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언제나 좋았을 리 없지만 언제나 앙숙이었을 리도 없다. 하지만 최근 한일관계는 경색을 넘어 냉동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동아시아 공동체의 일원이어야 할 한일관계의 기원을 찾고자 했다.
우리는 흔히 한국인의 반일감정이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 식민통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식민통치 이전에 일제가 저지른 조선인 학살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일제가 한반도에서 벌인 학살을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한다. 제1차 학살이 동학농민전쟁(1894-1895), 제2차 학살이 정미의병전쟁(1907-1909), 마지막으로 ‘정신의 학살’이 벌어진 식민통치기이다.
제1차 학살인 동학농민전쟁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제국이 ‘학살의 제국’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됐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러 통계를 통해 1894년부터 약 50년간 일제가 한반도에서 벌인 학살의 규모를 최소 수만에서 최대 수십만으로 추정한다. 비록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벌인 유대인 학살처럼 단시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덜 알려졌지만 일제가 벌인 만행은 ‘학살의 제국’이라 불릴 만한 짓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개념이 더 등장한다. 바로 조선과 대한제국이 ‘실패국가’라는 것이다. 일제가 아무리 한반도를 유린하려 해도 조선과 대한제국이 튼튼한 국가였다면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과 대한제국은 19세기 말부터 자기 백성과 영토를 보호할 의지도 군사력도 없어 처음엔 청에 기댔다가 아관파천 이후엔 러시아에 기대는 등 국가는 존재만 할 뿐 사실상의 통치는 불가능한 상태였다. 저자는 앞서 말한 조선과 대한제국의 무능한 상태를 국제정치학 용어인 ‘실패국가’로 규정한다.
하지만 국가가 아무리 유명무실한 상태라 하더라도 한반도에 사는 민중까지 무력한 것은 아니었다. 무능한 정부를 대신해 이 땅에 사는 민초들이 외세에 대항한 것이 바로 동학농민전쟁이었다. 일제 역시 한반도 침략의 가장 큰 걸림돌로 조선 민중을 지목했다. 그래서 민중의 저항을 뿌리 뽑기 위해 일제는 죽창과 화승총으로 무장한 조선인을 학살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민중의 항일 의지는 정미의병전쟁으로 다시 한번 되살아났다. 이번엔 일제에 의해 해산된 군대까지 합세해 저항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일제는 한반도 내 항일 세력의 싹을 모두 자르기 위해 ‘초토화 작전’을 벌여 십여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을 학살했다. 그 결과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때엔 일제에 저항할 세력이 일소되어 대한제국은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식민통치기 일본제국의 학살은 멈추지 않았다. 3·1운동 진압 과정에서의 학살, 간도 학살, 간토대지진 시기 조선인 학살 등 육신의 학살은 물론이고, 단발령, 신사참배, 창씨개명,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 ‘정신의 학살’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이 시기의 기억이 한국인에게 강하게 남아 지금의 반일감정으로 분출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실패국가’ 조선·대한제국하고는 전혀 다른 대한민국에 살고 있듯이, 한반도에서 학살을 자행했던 ‘학살의 제국’ 일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건설된 일본국과 다르다는 점이다. 저자는 간디의 “용서는 강한 자에게 주어진 특성”이라는 말을 인용하여, 과거에 사로잡힌 채 반일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강해져 건강한 민족정신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한일 간의 깊은 감정의 골을 메우고 양국 사이에 산적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일 양국은 피해자 혹은 가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역사의 주체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침략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스스로 기른 힘으로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사는 민중의 역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장 조선이라는 수렁에 빠진 한국인의 역사관

2장 일본 침략의 세 가지 후유증
증상 1 두 번의 학살은 망각하고 ‘정신의 학살’에 혼을 빼다
증상 2 조선의 내재적 붕괴에는 눈감고 망국의 책임을 일본에 전가하다
증상 3 제정신이 아닌 나라가 제정신이 아닌 나라에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다

3장 한일관계의 인식 전환을 위한 네 가지 주장
주장 1 조선은 ‘전쟁’을 통해 식민지가 된 것이지 병합조약을 통해 나라를 넘긴 것이 아니다
주장 2 ‘일제강점기’ 36년 중심의 역사서술은 ‘일제침략기’ 50년을 왜곡·축소하고 있다
주장 3 조선은 일본 침략 이전에 이미 ‘실패국가’였다
주장 4 국가는 망해도 민중과 민족정신은 살아있다

4장 제1차 학살―동학농민전쟁(1894-1895)
동학농민전쟁과 학살
국제사회의 무관심과 동학농민전쟁 접근법
근대국가의 대량학살
근대국가 일본의 형성
끌려간 도공이 살고 싶었던 국가
실패국가 조선
청의 실패패권
청일전쟁
새로운 과제

5장 제2차 학살―정미의병전쟁(1907-1909)
불완전패권과 학살
일본의 군사적 강점
비대칭전쟁과 의병전쟁
민간인 학살
잊힌 학살

6장 정신의 학살―일본의 식민지배(1910-1945)
식민통치와 학살
정신의 학살
전시기(1937-1945) 강제동원

7장 학살과 민족정신
민족정신과 민족주의
근대성과 정신
하나의 해답
어떻게 정신을 차릴 것인가?
민족정신과 한국

8장 학살의 교훈과 한일관계
두 가지 퍼즐
사과와 보상이 문제를 해결할까?
한국 사회의 개조
공동체의 경계 조정―민족공동체를 넘어서
민족정신의 회복―‘일제강점기’ 용어 문제
친일과 반일의 공존
정신의 부재와 민족주의―독도
일제 잔재의 보존 논란
일본 기업의 두 얼굴―신일철주금

저자 : 손기영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교수이며 전공은 국제정치이다. 영국 셰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3년간 같은 대학의 동아시아학과에서 강의했다.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중심으로 한 남한의 대북 포용 전략이다. 박사 학위 지도 교수가 일본의 국제정치 연구자였고, 이런 인연으로 일본의 릿쿄대학교와 도호쿠대학교에서 박사후 과정과 객원교수로 일하면서 한일관계를 포함해 다양한 주제를 연구했다. 박사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는 《한국일보》의 영자 신문 The Korea Times에서 15년 가까이 기자와 정치부장으로 재직했고, 주로 한국의 대미, 대일 외교와 통일 문제에 관해 많은 기사를 작성했다. 최근의 연구는 21세기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하는 데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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