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주문

저자 : 그레이엄 스위프트
역자 : 손영도

판형 : 변형국판 면수 : 466 쪽

발행년월일 : 2024-02-29

ISBN : 979-11-6956-069-6 03840

단행본 

가격 : 19000

버먼지에서 정육점을 하는 잭 도즈는 마침내 가게를 접고 은퇴하기로 결정한다. 신혼여행을 갔던 장소인 마게이트에 집을 사서 아내와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미처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잭은 자신에게 큰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길지 않은 투병 끝에 죽음을 맞이한다. 시작해 보지도 못한 은퇴 후의 새로운 삶이 아쉬워서였을까? 잭은 죽기 직전 편지를 통해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유골을 마게이트의 잔교에서 뿌려 달라고 요청한다.

이야기는 잭의 장례식 직후, 단골 주점 ‘코치 앤 호스(마차와 말)’에 네 명의 남자들이 차례로 모여들면서 시작된다. 잭의 친구인 보험회사 직원 레이 존슨, 청과물상 레니 테이트, 장의사 빅 터커와 잭의 양아들 빈스 도즈는 잭의 ‘마지막 주문’을 들어주기 위해 마게이트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마지막 주문》은 해군추모비, 윅 농장, 캔터베리 대성당을 거쳐 마게이트 잔교까지 가는 이 하루 동안의 여정을 75개의 짧은 장으로 나누어 묘사한다. 각각의 장은 인물들의 독백과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장들이 모여 마치 콜라주 작품처럼 이들 사이의 해묵은 감정과 얽히고설킨 과거를 그려낸다.

소설의 주인공 격인 레이는 잭이 제2차 세계대전 시 해외에 주둔했던 부대에서 만난 전우로, 운이 좋다는 이유에서 잭에게 ‘럭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실제로 그는 경마 경기에 돈을 걸어 곧잘 부수입을 올린다. 잭의 가장 친한 친구인 레이도 잭에게 아주 큰 비밀을 가지고 있다. 잭의 아내인 에이미와의 불륜 관계가 그것이다.

에이미는 마게이트로의 여정에 동참하지 않는다. 잭이 에이미와의 관계 회복과 함께하는 노후를 꿈꿨던 것과 달리 에이미의 마음은 잭에게서 떠난 지 오래이다. 연애 시절 둘 사이의 사랑은 중증 정신장애를 가진 친딸, 준이 태어난 후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잭은 영원히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할 딸을 용납하지 못했고, 그런 그의 속마음은 마게이트로의 신혼여행에서 곰인형을 바다에 던져버리는 행동으로 드러났다. 에이미는 그때 이후 그들 부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레이와 에이미의 관계는 준을 요양원에 맡긴 후로 단 한 번도 찾아가 보지 않은 잭 대신 레이가 에이미를 준에게 데려다주면서 시작된다. 레이는 내심 짝사랑하던 에이미와 함께할 시간을, 에이미는 잭에게 바라던 가족의 모습을 잠시나마 얻는다. 이 관계는 군대에 자원한 빈스가 돌아오면서 끝났지만, 은퇴 후 생활에 대한 잭의 작은 꿈은 이미 계획 수립 이전부터 배반당한 셈이다.

에이미는 꾸준히 잭에게 은퇴할 것을 권했지만 잭은 그것을 거절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잭이 은퇴를 결심했을 때 병이 그를 찾아왔다. 잭이 에이미와의 행복한 노후를 꿈꿀 때 에이미의 마음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잭은 마게이트로 돌아가 가족과의 관계를 바로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정확한 속내는 죽음과 함께 영원히 감춰져 버렸다. 관계 개선의 기회도 마찬가지이다. 삶은 결코 사람들이 원하는 걸 그들이 원할 때 주지 않는다.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이런 아이러니가 독자들의 마음에 깊은 안타까움과 여운을 남긴다.

이야기 속 갈등 구조의 한 축이 같은 세대 친구들 간의 우정과 질투와 배반에 있었다면, 또 다른 한 축은 부모-자식 간의 갈등에 있다. 버먼지의 친구들은 모두 배우자와 자식이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자식과 관계가 좋지 않다.

자식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빈스는 잭의 친자가 아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동네 아이로 도즈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빈스는 스스로를 ‘준에게 주려고 했던 아기 침대’에 놓인, 잭의 ‘무사 귀향을 축하하는 선물’이었다고 표현한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고 어렸을 땐 준의 대체제라고 여기며 상처도 받지만 끝내 도즈라는 이름을 버리지는 못한다. 잭의 일부라도 그가 행복했던 장소에 뿌려주고 싶은 마음에 갑작스레 차를 돌려 윅 농장으로 향하는 장에서는 빈스의 애증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잭은 빈스와 함께 ‘도즈 부자 정육점’을 운영하고 싶어 했지만 빈스는 그 일을 이어받고 싶지 않아 군대로 도피한다. 레이의 딸인 수지는 외국인과 사랑에 빠져 레이의 곁을 떠났고, 레니의 딸 샐리는 레니의 반대로 빈스와의 사랑에 실패해 자포자기한 채 매춘의 길로 들어선다. 별 탈 없이 가업인 장례업을 이어받은 빅의 아들들을 제외하면 자식 세대의 어떤 아이들도 부모가 원하는 대로 되어주지 않았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보고 살아가는 세상은 다른 세상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잭은 죽기 직전 빈스에게 빌린 천 파운드를 ‘럭키’에게 맡기며 자신의 운을 시험한다. 경마를 통해 에이미의 노후자금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레이는 정말 운에 결과를 맡기는 도박꾼은 아니다. 그는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경마에 투자하는 투자자에 가깝다. 다만 잭에게서 받은 부탁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운이 좋다면 모든 원칙을 무시해도 된다는 마지막 원칙에 입각해 가장 승률이 낮아 보이는 말에게 돈을 걸었고, 결국 원금의 삼십 배가 넘는 엄청난 수익을 얻는다. 레이와 잭의 운이, 잭의 마지막 도박이 제대로 성공한 그 시점에 잭은 세상을 떠난다. 잭이 레이에게 경마를 부탁한 것을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레이는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숨길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 잭의 아들, 빈스에게 잭의 유산을 주기로 마음먹는다.

부모 세대는 행복한 결말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결국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사람들에게 잊혀져 표지판은커녕 길마저 사라져버린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해군추모비, 더이상 홉을 따지 않아 한적해진 윅 농장의 풍경은 부모 세대의 시간이 지나갔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달라진 영국의 풍경을 통해, 그리고 빈스에게 전달되는 잭의 유산을 통해 사회의 중심이 이들 부모 세대로부터 자식 세대로 넘어갔다는 것을 암시한다. 전쟁의 시대, 네 노인의 시대는 끝났다. 빈스에게도 샐리에게도 자식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자기 부모 세대처럼 자식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게 될 것이다. 세상은 계속 그렇게 돌아간다.

이 작품은 부모 자식 간 갈등, 죽음, 정체성, 사회의 변화 등 보편적인 문제들을 다루며 독자들에게 공감하고 생각해 볼 만한 다양한 화두를 제시한다. 인물들 각자의 독백에 모호하게 드러나듯, “그들은 자신들이 곤란에 처해있는 세상에서 진실과 이해를 찾고 있다”(작품 해설 중에서). 그들의 깨달음과 변화를 살피며 마게이트로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이들도 확정된 답이 있을 수 없는 삶의 숱한 문제들에 대해 자기만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슬픔과 원망, 열정과 후회가 뒤섞여 있는” 이 작품은 “변화해 가는 영국의 모습과 변함없이 유한한 인간의 삶을 증언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1996년 부커상을 수상했다

마지막 주문

작품 해설

저자 : 그레이엄 스위프트

그레이엄 스위프트(Graham Swift)는 1949년 런던 남부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70년 학부 졸업 후 장학금을 받아 요크대학 영문학 석사과 정을 수료하였지만, 학위를 받지는 못한 채 작가 생활을 시작하였다. 경비원에서 농장 노동자까지 다양한 임시직으로 생계를 유지했고 대부분은 교사로 일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1980년 첫 번째 소설 《사탕 가게 주인The Sweet-Shop Owner》 이후 《셔틀콕 Shuttlecock》(1981)과 단편 소설집 《수영 배우기Learning to Swim》(1982)을 연달아 출간하였다. 《워터랜드Waterland》(1983)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이후 발표한 《에버 애프터Ever After》(1992)로 프랑스의 메이에르 ... more

역자 : 손영도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영국 노팅엄대학교에서 문학석사, 레딩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대학 글로벌학부 영미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조지 엘리엇과 토마스 하디 소설에 나타난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한 연구〉를 비롯한 다수의 논문과 《떠도는 세상의 예술가》, 《소설연구의 첫걸음》, 《자기만의 방》, 《동물농장》, 《시대사 속의 영국문학》 등의 역서가 있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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