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 일본은 오랜 역사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으며 각기 정치, 사상, 문화를 영위해 왔다. 특히 조선 시대 이후의 역사에서 일본은, 지금까지 배제할 수 없는 타자로서 ‘우리’를 자각하게 한다. 식민지 지배의 상흔은 최근 위안부합의를 둘러싼 마찰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생채기로 남아 있다.
임진왜란・정유재란(1592-1598)의 7년간의 긴 전쟁이 끝나고 17세기가 시작되고, 다시 일본과 국교를 재개된 후 통신사절로 가게 된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 먼 여정의 피로도 피로지만, ‘문명의 나라’ 조선을 침략한 ‘오랑캐’의 땅을 밟는 것 자체를 매우 꺼려하였음이 사행록 곳곳에 엿보인다. 겨우 자기 합리화하였던 한 방편이, 수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 치세를 분리시켜 ‘문명’을 개화하려고 노력하는 일본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칼의 나라에서 문명의 나라로. 이것은 비단 조선 지식인들의 자기 위안이 아니었다. 실제로 도쿠가와 시대 일본은, 양 허리춤에 칼을 찬 무사들이 지배하는 무위(武威)의 시대였지만, 그 후 별다른 내란 없이 오래도록 태평한 시대가 지속된 ‘팍스 도쿠가와’로 불릴 만한 그런 시대였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칼을 찬 무사들의 무사로서의 정체성이 대변환을 겪어야 했음을 웅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와타나베 히로시 전 도쿄대 교수의 《일본 정치사상사 17~19세기》는, 전쟁의 세기인 16세기를 끝내고 일상을 되찾은 태평한 시대의 일본의 속살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 저서이다. ‘문명’의 치세로 들어섰다고는 해도 그 체제를 유지하는 장치는 칼을 찬 무사의 정점에 올라 있는 쇼군의 ‘어위광’의 지배였다. 이러한 체제 속에서 다종 다양하게 꽃피운 사상과 문화를 저자는 생생한 필치로 되살리고, 260여 년간 지속된 그 ‘어위광’의 정치체제가 어떻게 막을 내리게 되는지, 어떻게 일본이 ‘문명개화’의 ‘근대’를 맞이하게 되는지, 그 내력과 양상을 설득력있게 서술한다. 이전 시대와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게 된 무사들의 고뇌와 그 사이를 파고든 유학의 양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주자학을 일본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수용했고, 또 어떻게 반발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떠한 새로운 사상이 태어나는지가 마치 변증법처럼 전개된다.
이토 진사이, 아라이 하쿠세키, 오규 소라이, 안도 쇼에키, 모토오리 노리나가, 가이호 세이료, 후쿠자와 유키치, 나카에 조민 등 사상가로서 개성과 매력이 뚜렷한 개별 사상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무사와 서민, 여성 등 각 계층의 생활과 사회 제도, 성 풍속, 서브컬쳐에 대한 언급도 풍부하여 사회사와 경제사의 관점에도 읽기에도 충분히 흥미롭다.
이를 통해 일본의 근대 개국과정을 흔히 서양 즉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이해하는 것이 편견에 의한 오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가 밝히는 서양의 개국 압력에 대한 일본의 ‘격렬한’ 수용과정은 바로 도쿠가와 일본의 역사에서 축적된 학문과 숙성된 ‘지’의 흐름이다.
원래 도쿄대학의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록을 책으로 엮은 만큼, 쉬운 문체로 설명하고 있지만, 저자의 리드미컬하고 힘 있는 문체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였다고 하지만, 그 내용의 범위와 깊이는 저자의 해박함과 연구자로서의 신랄함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읽혔던 마루야마 마사오의 《일본 정치사상사》와 비교해 보면 저자의 ‘에도 시대 읽기’의 매력이 배가된다. 또, 주자학적 이상과 그 실천으로 일관했던 조선의 지식인들을 대비시켜 읽는다면, 우리가 어렴풋이 알아왔던 ‘일본’의 모습이 한층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서장 이 책으로의 초대
1. 정치에 대한 물음
2. 일본·메이지 유신·역사의 즐거움
3. 타임머신을 타고
제1장 중화의 정치사상 ― 유학
1. 들어가며
2. 천天과 인人
3. 예禮와 도道
4. 오륜과 오상
5. 천자와 천하
6. 군·신·민
7. 예악·학교·과거
8. 수기치인
9. 삼대三代와 혁명
10. 화이華夷
제2장 무사들의 고뇌
1. 들어가며
2. 전국戰國시대에
3. 어정밀御靜謐 시대에
제3장 어위광御威光의 구조 ― 도쿠가와 정치체제
1. 권력과 종교
2. 폭력과 평화
3. 어위광의 모습들
4. 어위광의 장치
제4장 가직家職국가와 입신출세
1. 이에イエ
2. 종족宗族
3. 가업도덕
4. 시장도덕
제5장 매력적인 위험 사상 ― 유학의 섭취와 알력
1. 동기
2. 유자儒者의 출현
3. 사士와 군신
4. 인정仁政
5. 혁명
제6장 이웃 나라의 정통 사상 ― 주자학의 체계
1. 들어가며
2. 존재론
3. 인간론
4. 수양론
5. 통치론
제7장 ‘사랑愛’의 역설 ― 이토 진사이伊藤仁齋(도가이東涯)의 사상
1. 인물과 저작
2. 도道
3. 인정人情·풍속
4. 인仁
5. 왕도王道
6. 혁명
제8장 일본 국왕을 위하여 ―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사상과 정책
1. 인물과 저작
2. 안민安民
3. 예악禮樂
4. 일본 국왕과 공주共主
5. 서양과의 만남
제9장 반反‘근대’의 구상 ― 오규 소라이荻生徂徠의 사상
1. 인물과 저작
2. 방법
3. 도
4. 장치
제10장 무뢰와 방벌 ― 소라이학의 붕괴
1. 초조
2. 붕괴
3. 방벌 ― 야마가타 다이니의 사상
제11장 반反도시의 유토피아 ― 안도 쇼에키安藤昌益의 사상
1. 인물과 저작
2. 토활진土活眞과 전정轉定
3. 남녀
4. 자연의 세상
5. 법세法世
6. 복귀
제12장 어백성御百姓과 강소强訴
1. 연공年貢과 어백성
2. 무라오키테村掟와 하치부ハチブ
3. 소송과 공사公事
4. 잇키一揆와 강소
제13장 기묘한 진심 ―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의 사상
1. 게이추契沖
2. 가모노 마부치賀茂眞淵
3. 인물과 저작
4. 노래 배우기
5. 고대의 도
6. 고대의 도와 지금의 세상
제14장 민을 들뜨게 하다 ― 가이호 세이료海保靑陵의 사상
1. 인물과 저작
2. 지智
3. 다스림과 장치
4. 경제와 경쟁
5. 사士와 상인
6. 들뜨게 하다·상승시키다
7. 난문難問
제15장 일본이란 무엇인가 ― 구조와 변화
1. 구니國
2. 화이華夷
3. 일본국·일본인
제16장 성性의 불가사의함
1. 성과 정치체제
2. 우키요浮世와 색色
3. 이에와 색
4. 무사와 색
5. 금리와 합체
제17장 서양이란 무엇인가 ― 구조와 변화
1. 당인唐人과 이인異人
2. 기독교切支丹
3. 궁리
4. 삼대三代
제18장 사상 문제로서의 개국
1. 인·의·예
2. 도리의 소재
3. 세계 일통一統
제19장 와해와 일신
1. 난세적 혁명
2. 어국위御國威와 양이
3. 존왕과 무가
4. 인심 화합과 공의 여론
5. 폭정과 자유
제20장 문명개화
1. 바람風
2. 예의와 사람됨
3. 구한毆漢일치·백교百敎일치
4. 방법
제21장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원誓願
1. 인물과 저작
2. 독립과 문명
3. 네이션
4. 고상함
제22장 루소과 이의理義 ― 나카에 조민中江兆民의 사상
1. 인물과 저작
2. 이의理義
3. 정치와 이의
4. 정치의 이의
5. 생각해야만 한다
저자 : 와타나베 히로시
와타나베 히로시 渡辺 浩 1946년 일본 요코하마橫浜 출생. 1969년 도쿄東京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도쿄대학 법학부에서 조수와 조교수를, 1983년부터 2010년까지는 교수를 역임했다. 이후 호세이法政대학 법학부 교수로 2017년까지 교편을 잡았다. 현재 도쿄대학과 호세이대학의 명예교수이자 일본학사원 회원이다. 주요 저서로 《近世日本社會と宋學》(東京大學出版會, 1985, 増補新装版 2010; 한국어판: 《주자학과 근세일본사회》, 예문서원, 2004), 《日本政治思想史 十七~十九世紀》(東京大學出版會, 2010; 한국어판: 《일본정치사상사 —17~19세기》,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17), 《明治革命・性・文明 政治思想史の冒険》(東京大學出版會, 2021)이 있으며, 공저로 《トクヴィルとデモクラシーの現在...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