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오로지 한 편만 존재하는 만델슈탐의 시와 딥러닝이라는 차가운 처리 과정을 통해 무한히 복제되는 모종의 텍스트 간의 차이를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인의 전 생애와 그가 속한 시대 전체를 담고 있는 아흐마토바의 시와 수천억 개의 매개변수에 의존하는 저자 없는 텍스트 간의 차이 또한 지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수만 편의 평론과 연구서를 창출한 푸시킨과 단 한 편의 평론도 필요로 하지 않는 알고리즘 간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이 작성한 시는 인간이 쓰는 시가 왜 필요한지, 시를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시를 읽을때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생성형 로봇의 등장으로 디지털 전환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문학 작품을 읽고 분석하는 방식과 접근법 역시 달라질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야말로 변하지 않는 어떤 부분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해 줄 것이다. 만델슈탐의 말처럼 시는 존재의 물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시인을 포함하여 창조적 글쓰기를 하는 모든 저자와 그 글을 향유하는 모든 독자에게 읽고 쓴다는 것은 존재의 방식이다. 이 책에서 살펴본 시인들이 그 변치 않는 존재의 방식에 대한 견고한 기념비가 될 것이라 희망 한다.
서론
I. 알렉산드르 블로크
1 글쓰기와 지우기
2 끝이 없는 환상의 의미론
3 말의 분신
II 오시프 만델슈탐
1 ‘말 사랑’의 에세이
2 침묵과 음악과 말
3 잃어 버린 말을 찾아서
4 말의 죽음, 그 이후
III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
1 ‘의미보다 넓은 말’
2 열린 텍스트를 향하여
3 열림의 시학과 시인의 죽음
VI 서정시인의 윤리
1. 윤리적 바라보기
2. 명암의 순교자
V 바흐친과 시
1 다의미성과 다음향성
2 자볼로츠키와 카니발 뒤집기
3 아흐마토바, 카니발, 저자의 권위
결론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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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석영중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슬라브어문과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한국슬라브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푸시킨, 마야콥스키, 아흐마토바 등, 러시아 시인들의 작품과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자먀틴의 소설을 번역했으며 《뇌를 훔친 소설가》,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매핑 도스토옙스키》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푸시킨 작품집 번역에 대한 공로로 1999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으며 2000년도에 한국백상출판문화상 번역상을 받았다. 2018년 고려대학교 교우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