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킨 자신이 《예브게니 오네긴》에 붙인 부제 ‘운문 소설’은 독자에게 장르의 문제를 제기한다. 서구 문학의 소네트를 빌려와 자신의 ‘소설’에 맞는 형식으로 재창조한 셈인데, 특히 ‘오네긴 연’은 그 완벽한 형식미와 독창성으로 인해 러시아문학사에서 모방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연 형식으로 남아 있다.
주인공 예브게니 오네긴은 최근에 사망한 친척의 유산 상속인이 되어 시골 영지에 가는데 그곳에서 이웃 지주인 렌스키와 그의 애인인 올가의 집안과 친분을 맺게 된다. 올가의 언니 타티야나는 오네긴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오네긴은 그녀의 사랑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사소한 불화가 원인이 되어 친구 렌스키와 결투를 하여 그를 죽게 한다. 몇 년 뒤 오네긴은 페테르부르크에서 우아한 사교계의 여왕으로 변모한 공작부인 타티야나에게 열렬한 사랑을 느끼지만 이번에는 타티야나가 그의 사랑을 거절한다. 이렇다 할 사건도 속 시원한 결말도 없는 이 단순한 플롯을 비롯한 평면적 인물, 개연성 부족, 불분명한 주제 등의 작품 외적인 특성은 모두 전통적인 소설의 기본 조건에서 이탈한 것이다. 이렇게 “소설로부터 자유로운” 소설은 형식적 제한과 결합해 기묘하게 이율배반적인 ‘운문 소설’을 창조한다. 시클롭스키는 서구에서 들어온 문학의 요소를 패러디하며 또 그럼으로써 “정상적인” 소설 장르를 패러디한 이 작품을 가리켜 “패러디의 소설이자 소설의 패러디”라 일컬은 바 있다. 푸시킨은 시를 넘어서 소설로 간 것이 아니라 시도 소설도 모두 넘어서 독창적인 새 장르의 영역으로 들어간 것이다.
예브게니 오네긴
작품해설
아, 푸시킨!
작가연보
저자 : 알렉산드르 뿌슈낀
Aleksandr Pushkin (1799-1837)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국민 작가. 당시에는 이미 낡은 사조가 되어 있었던 고전주의와, 서구적 낭만주의 그리고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 문학계를 지배하게 될 사실주의 모두가 스며들어 있는 그의 작품들은 러시아의 수많은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연적과의 결투로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약 20년 동안의 창작 기간에 700여 편에 이르는 서정시와 단편〈스페이드의 여왕〉, 단편 모음《고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의 이야기》, 장편 소설《대위의 딸》, 희곡〈보리스 고두노프〉등의 문학작품을 썼으며‘운문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발하였다. 각 작품은 해당 장르의 영역에서 오늘날까지 전범으로 간주될 만큼 완벽한 예술적 가치와 시대를 앞서가는 작가의 ... more
역자 : 석영중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슬라브어문과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한국슬라브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푸시킨, 마야콥스키, 아흐마토바 등, 러시아 시인들의 작품과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자먀틴의 소설을 번역했으며 《뇌를 훔친 소설가》, 《러시아 문학의 맛있는 코드》, 《매핑 도스토옙스키》 등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푸시킨 작품집 번역에 대한 공로로 1999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으며 2000년도에 한국백상출판문화상 번역상을 받았다. 2018년 고려대학교 교우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more